경주마가 한 경주에 출전하기 위해 몸을 다듬는 데는 통상 2주, 주로가 쉬는 날을 제하고 나면 대략 열흘 안팎의 시간이 필요하다. 마방에서는 이 10여 일의 시간표에 맞춰 근육을 다지고, 호흡을 틔우며, 실전 승부처에서 폭발할 탄력을 차근차근 끌어올린다. 마방 식구들이 쏟아붓는 그 정성 어린 땀방울이 실전 채비의 정점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바로 주로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노란 잭킹’이다.

이번 주 실전을 앞둔 말은 노란 잭킹을 달고, 다음 주 이후를 길게 내다보며 체력을 다지는 말은 빨간 잭킹을 단다는 규정은 단순한 색상의 차이가 아니다. 이는 매일 새벽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주로를 지키는 관찰자와 마필의 작은 변화까지 읽어내려는 팬들이, 한정된 시간 안에 이번 주 승부마들의 컨디션을 오롯이 살필 수 있게 돕는 가장 기본적인 이정표이자 상호 간의 약속이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종종 고개가 갸웃해지는 장면들이 목격된다. 열흘 전부터 이미 실전에 준하는 강도로 훈련을 착실히 소화해 놓고도, 정작 규정된 노란 잭킹을 달 생각조차 않은 채 빨간 판을 단 채로 조교를 이어가는 모습들이다. 사전출마등록에 분명히 이름을 올려두었음에도, 마방 자체적으로 ‘상금 순위에서 밀려 정원 밖으로 탈락할 것 같다’고 지레 예단해 버리는 경우가 주된 이유일 것이다.

물론 마방의 현실적인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한 경주에 20~30두가 몰려 11두 안팎만 살아남는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출전이 불투명한 말을 두고 굳이 번거롭게 판을 바꿔 달아가며 유난을 떨 필요가 있겠느냐는 실무적인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란 언제나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앞선 순위의 유력마가 갑작스러운 다리 열감이나 컨디션 난조로 출마를 포기하는 순간, 탈락을 예상했던 그 마필이 뜻밖의 실전 출전 기회를 잡게 되는 일은 주로에서 결코 드문 풍경이 아니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관찰자들은 빨간 잭킹을 단 마필을 보며 ‘아직 시간이 남은 말이겠거니’ 하고 자연스레 시선을 덜 두게 마련이다. 그런데 사각지대 속에서 시선을 비껴가 있던 마필이 덜컥 실전 주로에 올라서고, 심지어 그동안 착실히 쌓아온 10일간의 훈련 내공을 발휘해 멋지게 입상까지 해버리는 상황이 펼쳐지곤 한다. 마방으로서는 뜻밖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훌륭한 성과를 낸 기특한 결실이겠지만, 주로 밖에서 훈련의 모든 과정을 신뢰하며 지켜보던 이들에게는 분석의 맥이 풀리고 깊은 허탈감이 남는 순간이 되고 만다.

설령 상금 순위에서 밀려 최종적으로 출전을 못 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사전등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면 원칙대로 노란 판을 달고 나서는 것이 옳다. 출전이 성사되든 끝내 낙오가 되든, 정해진 절차에 이름을 얹었다면 그에 걸맞은 표식을 갖추는 것이 주로를 함께 바라보는 이들을 향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성숙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시행체 역시 화려하고 거창한 구호로 공정경마의 큰 틀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매일 새벽 주로 위에서 마주하는 이런 작고 사소한 약속들이 현장에서 빈틈없이 지켜지고 있는지 조용히 살피고 보듬을 필요가 있다. 현장의 작은 배려와 세심한 원칙 준수가 새벽 주로 위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릴 때, 마사회가 그토록 지향하는 ‘진정한 공정경마’도 비로소 그 속에서 잔잔하고 단단하게 완성될 수 있지 않을까.